화학업계가 잇따른 실적 쇼크에도 신사업에 ‘조(兆) 단위’ 자금을 쏟아붓는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다. 업황 악화에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등 ‘3고(高)’ 환경까지 겹쳐 투자를 축소하는 다른 업계와 대비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타를 맞은 순수 화학업체와 달리, 사업 다변화에 나선 곳은 3분기 실적이 비교적 양호하게 나와 ‘체질 개선’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8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내년에만 4조원 규모의 설비투자(CAPEX)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배터리 핵심소재인 동박을 제조하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대금 2조7000억원을 포함한 숫자다. 롯데케미칼은 올해에만 2조원 넘게 투자를 집행했는데,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1조원 수준의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롯데케미칼의 투자 계획 발표는 3분기에만 4239억원의 손실을 낸 가운데 이뤄졌다. 4239억원 손실은 시장 전망치(-1070억원)를 대폭 하회한 것은 물론, 전년 동기(2883억원) 대비 적자 전환, 전 분기(-214억원) 대비 손실 규모가 20배 가까이 확대된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올해를 어려운 시기로만 보내지 않고 회사의 내실을 단단히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향후에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SK케미칼 역시 실적부진 속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놨다. SK케미칼은 화학적 재활용, 바이오 소재, 그린 에너지로 화학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하기 위해 1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이 부문에서만 2조6000억원의 매출을 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SK케미칼은 3분기(연결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2분기보다 13.7%, 43% 줄어든 4325억원, 497억원에 그쳤다.

LG화학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계기로 배터리 소재 생산의 현지화 요구가 커진 만큼, 북미 양극재 증설 규모가 “현재 계획보다 다소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또다른 배터리 소재인 분리막 역시 지금은 헝가리에서 양산을 준비하고 있지만, 북미에서도 진행할지 검토 중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안정적인 가동률을 전제로 분리막 사업을 꾸준히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3분기 실적을 고려하면 화학업계가 체질 개선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케미칼을 비롯해 금호석유, 대한유화, 효성화학, 효성티엔씨 등은 전분기 대비 영업손실이 커지거나 적자전환했지만, 다양한 사업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91.4% 줄었지만, 전체 영업이익은 오히려 23.9% 늘어난 LG화학이 대표적이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화학업체의 3분기 실적은 퓨어(순수 화학) 업체와 석유화학 외 사업도 활발하게 영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업체의 분위기가 달랐다”며 “이번 3분기 실적은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씨스켐닷컴(2022-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