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화학 업체들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3분기에 호실적을 낸 데 이어 올해 4분기, 내년 상반기까지 좋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이다. 석유 제품의 수요 증가가 증산 규모보다 커 정제 마진이 높게 유지되고, 주요 선진국들의 경기가 회복되면서 화학 제품 수요도 늘고 있다. 정유·화학 업종이 대호황을 일컫는 이른바 '수퍼사이클'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나온다.

변수로는 유가가 꼽힌다. 국제 유가가 스위스팟(적정선)인 60달러선을 넘어설지가 관건이다. 유가가 너무 높아지면 관련 석유화학 제품들의 가격도 큰 폭으로 올라 주요국의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어 수요를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에쓰오일은 지난달 30일 개최한 올해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4분기와 내년 전망에 대해 "정제마진 개선 지속과 공장 가동률 극대화, 고부가가치 제품을 통한 시장 공략 등으로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에쓰오일은 또 "올해 휘발유 정제마진이 지난해에 예상했던 것보다 좋을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에도 세계 경제가 회복될 경우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배럴당 6.1달러 수준이던 정제 마진은 올해 8월 들어 10달러선을 넘어섰다가 지난달까지 8달러대를 유지했다. 통상적으로 정제마진의 손익분기점은 4~5달러대로 본다. 최근 석유 제품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이런 정제 마진 강세 국면이 향후 2~3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아시아 지역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석유 규모는 3300만배럴 수준이다. 중국, 인도의 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매년 80만~90만배럴 규모의 신규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반면 새로 가동되는 정유설비는 내년 26만배럴(하루 기준), 2019년 44만배럴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설비 증설이 주춤한 데는 글로벌 정유업체가 정제 설비보다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신성장동력에 투자를 집중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정제 설비를 새로 짓고 가동하기까지 짧게는 2~3년, 길게는 4~5년이 걸린다. 올 하반기 휘발유와 등유·경유 등 난방유 수요나 유럽 제조업 경기 회복에 따른 산업용 연료 수요가 늘 것으로 예측되는 것도 당분간 정제 마진 강세가 전망되는 배경이다.

박연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3분기 정제마진 강세와 유가 상승으로 정유부문 실적이 개선됐다"며 "정제마진은 비수기임에도 배럴당 7달러 후반으로 여전히 높고, 4분기 난방 수요 증가에 따라 정유부문 영업이익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에 민감한 석유화학 업체들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경기 회복으로 생산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 높아질 때, 석유화학제품 수요는 1.2~1.8% 정도 높아진다. 지난해 국내 에틸렌 생산량은 852만4000t으로 전년 대비 25만톤 늘었다. 그런데도 에틸렌 가격은 톤당 1350달러(9월 말 기준)에 달하는 등 강세다. 미국 화학 공장들이 태풍 ‘하비’의 피해를 아직 복구하지 못해 수급 불균형이 생겼기 때문이다.

'수퍼사이클' 정유·화학업계, 호황 이어진다…유가 60달러 돌파가 관건 석유화학 업계는 세계 경제가 계속 나아지고 있는 추세라서 수요가 꾸준할 것으로 본다. 중국이 환경 규제를 강화한 점이 국내 업체들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최근 환경규제 정책의 일환으로 석탄 생산 감축에 들어갔다. 이에 석탄 가격이 급등, 석탄을 원료로 PVC를 만드는 중국 업체들의 생산량도 덩달아 감소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아시아 지역 석유화학 제품가격을 높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 국내 업체들의 PVC 판매 수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미국의 ECC(에탄 분해시설) 증설에 따라 한국 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완화되고 있다. 한국 석유화학 업체들은 NCC(납사 분해시설)를 돌려 화학 산업의 쌀로 불리는 기초재료 에틸렌을 생산한다. 반면 미국은 에탄가스를 이용하는 ECC 시설을 늘렸다. 2017~2019년 가동되는 에틸렌 생산 규모는 950만t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는 세계 에틸렌 소비량의 6.5%에 해당한다. 그러나 운영 전문인력 부족으로 대형 설비 양산 시기가 지연되고 세계 주요국의 경기 호조가 이어지면서 증가하는 공급만큼 수요가 뒷받침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60달러선을 넘어 계속 오른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유가의 상승은 재고 관련 손실을 줄여 판매 및 수출 단가를 높이는 효과를 낸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정유사에 이득이다. 하지만 60달러를 넘어 고유가로 향하게 되면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 자체가 감소하게 된다.

유가정보시스템인 오피넷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50달러 중반대에서 한 달넘게 주춤하던 두바이유 가격이 10월 말부터 다시 상승하면서 지난 1일 배럴당 59.61달러까지 올라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선을 기록한 것은 2015년 7월 1일(60.93달러)이 마지막이다. 정유사 관계자는 "원유가격 부담이 커지면 정제마진 폭이 줄어 수익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제유가가 60달러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격대를 넘어서면 미국 셰일업체들이 증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김훈길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OPEC 감산연장과 경기 개선에 따른 원유수요 확대로 유가가 일시적으로 50달러 후반대까지 충분히 오를 수는 있다"면서도 "조만간 미국 셰일업체들이 증산에 나설 개연성이 커 국제유가가 박스권 안에 갇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미국과 중국의 통상압박도 넘어서야 한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선언했다. 태양광전지, 에폭시, 산화방지제, 폴리에스터(PET)필름, 타이어코드, 석유수지 등 미국 수출비중이 높은 제품들에 대한 반덤핑 관세도 예상되고 있다. 중국은 자국 화학업체 보호를 목적으로 현재 스티렌모노머(SM), 폴리아세탈산(POM) 등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진행 중이다.

씨스켐닷컴(2017-11-07)